2014년 3월 13일 목요일

15. 경쟁이 경제 원칙을 넘어설 정도로 너무 치열해졌다. (Part. 4)


이 역시 전세계에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면서 모기업의 잉여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모기획의 약속"과 동일한 배경에서 나온 광고계의 병폐가 바로,
경쟁입찰에서 애니매틱 시안 제작....

광고 시안을 설명할 때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쓰는 방법은 바로 스토리보드라고 해서 15초면 대략 8~10컷 정도의 영상을 스틸 컷 그림으로 그리고 (혹은 포토샵으로 기존의 사진 등에서 따와서 합성해서 만들고) 각 컷마다 카피와 사운드, 영상 효과 등의 설명을 붙이는 걸로 작업을 해서 광고 시안을 설명하는거다.
뭐 미국 보니까 보드 붙이지 않고 클리어 파일 같은거에 넣어서 설명도 하더만, 어쨌거나 이 스토리보드는 광고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에서도 폭 넓게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학생 공모전 스토리보등의 사례]
 
 

근데 애니매틱이 뭐냐면,
각 스토리보드의 스틸 컷에 해당하는 부분을 기존에 이미 제작한 다른 광고물이나 영화, 드라마 등의 "동영상"에서 원하는 부분을 편집실에서 짜집기를 하고 여기다가 새롭게 녹음실에서 성우 불러다 녹음 하고 음향도 넣고 해서, 실제 광고 촛수에 맞추어 15초 혹은 30초에 맞게 편집한 동영상을 의미한다.
제안하는 모델이 전지연이면, 전지연이 출연한 영화나 광고에서 최대한 비슷한 앵글과 장면, 입이 맞는 거 찾아서 끼워 넣고, 혹은 그런게 없으면 다른 (주로) 일본 영화나 광고에서 비슷한 장면의 비슷한 여배우 찾아 넣어서 광고주에게는 "시안이니까 전지연은 아니더라도 전지연이라고 생각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고 설명하는거다.


제작 비용을 비교하면, 스토리보드는 한 컷을 맥으로 합성해서 만들면 대략 10~20만원 정도 소요되고 15초에 8~10컷이면 대략 100~150만원 정도 나오겠지? 
보통은 외주를 많이 주지만 여차하면 광고대행사 안에서도 아트 디렉터 있겠다, 맥킨토시 있게다, 그래서 만들수는 있다.
반면 애니매틱은 기본적으로 편집실과 녹음실이라고 하는 외주처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동영상 다 찾아서 끼워 넣는 생 노가다를 해야 하기 때문에 편당 대략 300~600 정도 든다.
뭐 당연히 스틸컷보다 동영상 만드는게 돈 많이 들겠지?
거기에 성우비 줘야지, 만일식품이나 치킨/피자 같이 전화 받는 광고주라고 징글이나 Song도 만들 경우 바용이 더블로 든다.

근데 보통 입찰을 붙이면 시안을 보통은 2개~4개 정도 가져간다.
글면 스토리보드로 해도 150 X 4 = 600만원이 드는데, 애니매틱을 하면 450 X 4 = 1800만원이다. 즉 3배가 드는 것이다.
거기에 같이 입찰에 참여하는 프러덕션 쪽에 아이디어 받고 애니매틱 만들 때 좀 봐주는 조로 기획료를 주면 500만원은 줘야 하고 (안주고 하는 경우도 많지만), 기획 쪽에서도 뭐 하나 조사를 하거나 자료 사려면 돈이 드니
애니매틱으로 입찰을 하면 2500~3000만원은 족히 든다.

그런데 요즘에는 스토리보드로 하는 경쟁입찰은 거의 없다.
경쟁 입찰에서 광고주가 제한하거나 서로 합의하지 않으면 대부분 애니매틱 만들어 간다.
더 웃긴건 "찍어도" 간다.

농담이 아니고 실제 프러덕션 쪽에서 카메라 대여하고, 조명, 분장, 미술 다 쓰고, 대역 모델 쓰거나 심지어는 그 "대행사의 힘" 혹은 "광고주의 힘"에 따라 실제 연예인 모델을 찍어서 가기도 한다.
(작년에 모 통신 광고가 그랬대매? 시안으로 찍어 갔는데 거기 management가 OK 하는 바람에 그 시안을 그대론 혼방으로 틀었다는... 제작비 줬을까?...)

보통은 세트를 짓거나 하지 못하니까, 아주 간단한 배경으로 찍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만일 캐논 오두막 같은게 아니라 실제 HD카메라 동원했다면 하루찍어도 대략 편당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0만원에서 2500만원은 들지 않을까 싶다. 이게 다 외주처들에다가는 "시안이니까 저렴하게 합시다" 라고 하는 단가고 똑같은 사람들 불러서 혼방 (실제 제작할 버전)이라고 하면 단가가 많이 달라지겠지.

그게 4편이면... 1억원이다.

자 왜 전세계 다른 나라들은 다 스토리보드로 하는데 우린 왜 이 난리를 치는가?
우선 문제는 광고주다.

일전에 쓴 대로 우리 나라 광고주들은 대부분 순환보직으로 돌거나 하다보니 여전히 광고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서 스토리보드를 설명했을 때 머릿속으로 실제 어떤 광고가 나오겠구나 하고 상상을 잘 못한다.
거기에 실무진들은 그나마 젊으니까 나은데, 문제는 광고대행사 입찰에 꼭 회장, 사장 같은 나이먹은 꼰대들이 들어와서 결정을 하다보니, 그런 꼰대들은 기본적으로 상상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광고 시안 결정하려는 회장, 사장들... 안바쁘냐? 그게 그렇게 중요하더냐? 너의 개인적인 취향이 정말 당신의 소비자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더냐?)
그렇다보니, 광고주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스토리보드보다는 돈이 들어도 애니매틱이나 실제 찍은 시안이 자기가 이해하기도, 그리고 윗사람들에게 보고하기도 편하니까 선호를 한다.

그러면... 그 비용을 주면 되겠지? 우린 우리 아이디어를 스토리보드로도 충분히 설명하는데 지들이 이해가 안된다면 지들 브랜드 업무를 위해서 입찰을 진행하는데 그 편의를 위해서 당연히 지급해야겠지?

근데... 안준다...

왜?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거의 모든 지적노동을 통해 아이디어를 파는 산업에서는 입찰을 붙이려면 여기에 응하는 회사들에게 "Rejection Fee" 라는 걸 준다.

BI 회사의 성과물이 단어 몇 줄과 간단한 로고 그림이 몇 개 적혀 있는 A4지가 아니고
디자인 회사의 성과물이 좀 급조한 느낌이 있는 Mock-up 모형이 아니며,
건축 설계회사의 성과물이 애들이 갖고 놀것 같은 미니어처 모형이 아닌 것처럼
광고대행사의 성과물이 WMV나 AVI 파일 형태의 30초짜리 동영상 파일 4개가 아닌 것처럼

이 모든 지적 노동 산업의 성과물이 결국 "아이디어"이며
입찰 현장에서 본 A4 기획서나, mock-up 모형이나, 미니어처 모형이나 파일들은 단지 그 회사들이 갖고 있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아이디어"를 클라이언트가 이해하기 쉽도록 구현하는 설명을 위한 보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거의 모든 지적 노동 산업에 종사하는 회사들을 대상으로 입찰을 하는 회사들은, 만일 크리덴셜이 아닌 실제 "아이디어"를 시안으로 보기 위해서는, 입찰에 선정될지 않을지도 모를 Risk를 감수하고 참여해야 하는 각 대행사들에게 그에 합당한 댓가 Rejection Fee를 입찰 사전에 약속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Rejection Fee가 단지 그 A4지나, 모형이나 동영상 파일 몇 개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제작 비용을 커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핵심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비용"인 직접비/투여 인원의 급여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생각하며 당연히 이러한 Rejection Fee의 수준이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의 수준 및 요구되는 입찰 제안물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대부분의 지적 노동에 종사하는 회사를 고용하려는 클라이언트가 이렇게 행동하는 그 근간에는 "이 세상 어느 정신나간 대행사도 자기가 손해보면서까지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입찰에 참여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이성이 존재한다.

딱 하나,

모그룹으로부터의 배타적인 물량 지원 속에 쌓여진 잉여 수익을 모그룹으로 정당하게 돌려주지 않고 자신들의 신규 광고주 유치를 통해 활용하므로서 그 지배 주주인 재벌 일가의 부를 축적하고 거기에 부역하는 경영진들의 수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는 인하우스 대행사들이 전체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광고대행사들의 수치심 없는 "개발 노력"에 편승하는 대한민국의 광고주들만 빼면...

왜 안줄까?

이런거 줘야 된다고 윗사람한테 이야기할 배짱도 없고,
왜 안주던 비용 발생시키냐고 윗사람이 물을 때 대답할 양심도 없고,

무엇보다도 안줘도 입찰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줄서는 광고대행사가 너무 많으니까...

재미있는건 Rejection Fee를 안주는 대한민국 광고주들은 경제원칙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이다.
돈 안되는 건 안한다는 경제원칙을 어기고 말도 안되는 경쟁에 스스로 참여하려고 애걸 복걸하는 건 결국 대한민국 광고대행사의 문제인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