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전 글이 생소한 광고대행사 직원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실상은 노예로 입사해서 지금껏 노예로 살아오느라 다른 자유인의 삶은 모를지언정
오늘도 나는 광고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표 모 그룹에 다녀" 라는 말을 부모님이나 배우자가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몇몇 들이 있기도 하더라.
생소하면 물어보라,
외국까지도 가지 말고
대한민국의 어느 BI회사가, 어느 디자인회사가, 어느 건축설계사무소가
온라인에 띡 뜬 입찰 공고만 보고, 아무런 Rejection Fee도 받지 않고
자기네 인원들 밤샘 근무 시켜가면서, 외주처 돈주고 고용해 가면서,
입찰 장소에서 클라이언트 앞에서 생각해간 브랜드 네임 후보작 20개씩 까고, 로고 디자인 40개씩 까고, 디자인 시안 20개씩 까고, 설계도면 및 모형 까고 나서
안됐다는 통보에 "네, 잘 알겠습니다... 담에 더 열심히 할테니까 꼭 기회 주세요" 라고 하고 돌아서는 곳이 있는지...
(그리고 나중에 나온 브랜드 네임이나 디자인이 자기들이 한거랑 똑같네 하면서 흥분하지만.... 정작 전화 한 통 하고는 "알겠구요 다음에는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라고 하는 곳이 있는지...)
그리고 돌이켜보라...
지금까지 참여한 광고 입찰 중에서 rejection fee 주는 입찰이 몇 건이 있었는지...
스토리보드만 들고간 광고 입찰이 도대체 몇 건이었는지...
혹시 애니매틱도 넘어서 찍어간 경우는 몇 건이었는지...
"개발비"라고 들어간 비용이 지난 번 입찰에서는 얼마였는지...
그리고 생각해보라
내가 하는 일이 애니매틱 동영상 파일 만드는 일인지, 광고 아이디어를 만드는 일인지...
내가 모그룹 회사원인지 아니면 광고인인지...
그리고 분노해야지...
애니매틱과 실사 촬영 관련한 업계의 이야기들은 너무 많다. 아주 아주 몇 개만 보면,
1. 작년인가 어느 외식 브랜드 입찰에서 모 대행사가 16개를 실사로 찍어왔다고 하던데.. 그 때 그 외식 브랜드 빌링이 30억원 정도 되었을거다. 글면 대략 4억원 수익 나는 거고 인건비 빼면 1.2억원 정도 남을텐데 만일 개발비가 이것보다 더 많이 들었다면.... 왜 했지? (위에다가는 60억원이라고 했겠지...)
2. 근래 모 재벌그룹 계열사 입찰도 불티났는데, 역시 돈 많은 모 대행사에서 들인 총 개발비는 1억원대.... Rejection Fee를 받기는 받았는데 몇백만원이었다고 한다... 뭐 모그룹 계열 물량에서 얻은 초과 수익으로 가뿐히 처리? OK?
3. 잘 나가던 모 대행사가 있었는데, 슬럼프인지 한 해 동안 한 20개 되는 입찰에서 떨어지고 나서, 정신 차리고 보니 그 해 개발비가 10억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고스란히 적자가 되었겠지...
4. 앞 글에서 이야기 한 대로 회장님이 직접 결정하시는 모 브랜드 입찰에서 독기를 품은 한 인하우스 대행사가 아예 모델하고 쇼부를 치고 실사로 찍어서 제시를 한 거지... 실무자들은 사실 그 모델이 싫어서 다른 대행사 제안에 점수를 많이 줬는데, 아뿔싸, 회장님의 취향은 바로 그 모델이었던거라... "좋네, 저거 그대로 내보네...." 결국 입찰 한 후에 며칠도 안지나서 시안으로 제시한 소재가 그대로 혼방으로 나가고... 가뜩이나 광고비 많은 그 브랜드에서 그 편은 정말이지... 톡 튀는... 거기서 제안한 슬로건은 지금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단명 캠페인이 되었다는... 정말 그 제작비는 그냥 서비스로 나간건가?
자, 이젠 이해될 것이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자기의 이름 걸고 아이디어 하나 믿고 시작하는 광고계의 영웅들이 더 이상 나오기 힘든 이유를...
우선 현실적으로는 매체 지급보증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매체 업무를 하려면 코바코와 조중동에 사전에 3개월치 광고료 / 1억원 정도를 각 매체사에 선지급 식으로 / 지급보증 식으로 내야 하는 건데, 여기서는 우선 매체까지 하는 종합대행이 아니라 제작 대행만 한다고 치자 .
제작 대행만 하려고 해도, 광고주를 위해 입찰에서 아이디어 보여주는데만 해도 우선 피치 준비에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
돈 없으면 스토리보드로 하면 될텐데, 문제는 광고주 수준이 하도 낮다 보니 스토리보드로 제시하는 불세출의 아이디어도 돈으로 쳐바르고 녹음 Song까지 만들어서 깔끔하게 해온 애니매틱이나 심지어 실사로 찍어온 시안을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 전 세계에서도 하필이면 대한민국, 그것도 광고업계에서 일하는게 자기 팔자라고 생각해서 살던 집 담보 잡혀서 돈 빌려서 애니매틱 시안 만들어서 제시했다고 치자.
광고주가, "아 시안은 그 쪽이 참 좋은데.... 모 기획에서 자기들하고 하면 시안은 그렇게 다시 제시해준다고 하고... 대신 모그룹 사무실마다 하나씩 놔 준다고 해서..... 죄송해요..."
이거 두 번 당하면 돈도 돈이지만... 멘탈이 완전 붕괴될 것이다...
자 다시 이야기 하지만 광고업계의 경쟁은 이제 경제원칙을 벗어난지 오래다.
경제원칙을 벗어나 자기 돈으로 자기 아이디어 개발해서 공짜로 광고주에게 보여주는게 비정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거기에 수익성과 상관없이 애니매틱에 시안까지, 지들끼리의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모그룹에서 받은 잉여 수익을 쏟아 붇고,
그것도 모자라서 광고주가 정확하게 요청하지도 않은 "모 기획의 약속"까지 퍼부으면서 그저 굽신굽신...
아...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에서 자본주의의 경제원칙은 언제쯤 다시 적용되려나...